취향이라는, 마지막 인간의 감각
### 취향이라는, 마지막 인간의 감각
AI가 세상을 재편하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글을 쓰고, 목소리 하나로 이미지를 만들며, 세상은 점점 매끄럽고 반짝이는 효율로 채워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술의 최전선에서 실리콘밸리가 새삼스럽게 꺼내 든 단어는 ‘취향’이다.
폴 그레이엄은 “AI 시대일수록 취향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말했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제품보다 감각을 팔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취향은 이제 하나의 **사업 모델**이고, “AI가 데이터를 모으듯 스타트업은 취향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단어 속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인간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술의 풍경 속에서 — 그들이 찾는 ‘취향’이란 정말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기술이 흉내 낸 향기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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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냄새를 흉내 내는 기술
AI는 이제 거의 모든 것을 대신한다.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심지어 예술가처럼 감정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 감정은 감정의 형태만 빌려온 그림자 같다.
최근 오픈AI는 자전거를 타는 손, 노트 위를 스치는 연필, 바둑알을 잡은 인간의 손끝을 비추는 광고를 공개했다. 그 장면들은 한편의 시처럼 아련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 부재’이다. 인간이 그리운 기술, 그것이 바로 오늘날 AI가 팔고 있는 상품이다.
앤트로픽은 ‘Thinking’이라 새겨진 모자를 만들며 사고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그들의 기술은 너무나 비인간적이기에, 누군가의 체온을 빌려 입혀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현상을 ‘취향 세탁(taste-washing)’이라 부른다. 차가운 기계의 몸에 따뜻한 인간의 옷을 입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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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낄 수 없는 존재에게서 아름다움을 배우려는 시대
최근 한 언론의 실험에서, AI가 쓴 문장과 인간이 쓴 문장을 구별하는 테스트에 절반의 독자들이 후자보다 전자를 택했다. 그들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느낌’ 그 자체를 잃어버린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을까.
우리가 스크롤을 내릴수록,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계산한다. 그러나 취향은 원래 계산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감정의 무늬이고, 흔들리는 영혼의 방향이다.
볼테르는 말했다. “미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느끼고, 그 앞에서 감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문장은 AI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심연을 가리킨다—‘느낀다’는 것, 바로 그것이 인간의 최후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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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느낀다
‘좋다’는 감정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무언가에 마음이 움직이고, 불완전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 효율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 논리로 증명할 수 없는 울림. 그것이 바로 취향이자, 인간의 존엄이다.
AI는 언젠가 모든 기술을 완성하겠지만, 감동의 기술만큼은 끝내 배우지 못할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자동화되어도, 누군가는 여전히 느낄 것이다.
코드를 짜는 손끝이 아니라, 마음이 떨리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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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전은 언론 칼럼의 논리 구조보다, **에세이적 흐름과 문학적 감수성**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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